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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한 직업 소개

배첩장: 천년 고문서를 살리는 서화 보존 장인의 손끝

한 나라의 역사는 기록으로 전해집니다. 종이에 남겨진 글과 그림, 문서와 서화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담은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그러나 종이는 세월의 무게를 온전히 견뎌내지 못합니다. 습기, 곰팡이, 빛에 의한 손상, 그리고 단순한 노화 과정만으로도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종이는 바스라지고 찢기며 결국 사라져버립니다.

이처럼 위기에 처한 고문서와 서화를 되살려내는 이들이 바로 배첩장입니다. 배첩장은 전통 한지와 천연 접착제를 활용하여 고문서를 복원하고, 서화를 본래의 아름다움에 가깝게 되살리는 장인입니다. 그들의 기술은 단순한 수리 기술이 아니라, 우리 역사를 보존하는 문화적 사명에 가깝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배첩장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희소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 극소수의 장인들만이 이 귀중한 기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배첩장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조선의 서책을 직접 읽을 수 있고, 고려의 고문서를 눈으로 확인하며, 선조의 붓끝이 담긴 서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배첩장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천년의 시간을 이어주는 가교라 할 수 있습니다.

천년 고문서를 살리는 서화 보존 장인

배첩장의 의미와 기술적 본질

배첩장의 어원은 ‘덧붙여 바친다’라는 뜻을 가진 배첩(褙帖)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종이의 뒷면에 한지를 덧붙여 보강하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실제 배첩장의 작업은 훨씬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찢어진 문서나 훼손된 서화를 단순히 붙이는 것이 아니라, 원본의 질감과 색상, 강도를 최대한 살려내며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배첩장은 전통 한지를 활용합니다. 한지는 삼지닥나무 껍질로 만든 섬유질이 강한 종이로, 일반 종이보다 수명이 길고 통기성이 뛰어나 복원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접착에는 화학풀 대신 쌀풀, 밀풀 같은 천연 접착제를 사용합니다. 이는 수백 년 뒤에도 다시 떼어내거나 재복원이 가능하도록 배려한 전통 방식입니다. 배첩장의 작업은 마치 외과 의사가 환자의 몸을 세밀하게 다루는 것과 유사합니다. 한 장의 문서에 남은 먹의 농도, 필획의 흐름, 종이의 섬유질 하나까지 분석하여 손실된 부분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과정은 단순한 수리가 아닌 예술적 복원이라 부를 만합니다.

 

희귀 직업으로서 배첩장의 현실과 위기

오늘날 배첩장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희귀 직업 중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이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매우 길고 험난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한지 제작부터 서화의 감식, 천연 접착제의 조제, 습기와 온도 관리까지 모두 숙지해야만 비로소 배첩장의 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은 단기간에 배우기 어렵고, 최소 10년 이상의 도제 과정을 거쳐야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안정적 직업으로 보이지 않기에 지원자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또한 배첩장의 경제적 기반은 제한적입니다. 이들의 주요 작업 의뢰처는 박물관, 도서관, 문화재 연구기관 등인데, 의뢰 건수가 많지 않고 수익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상당수 배첩장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후계자 양성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국가 차원에서 배첩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으나, 제도적 지원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약 이 기술이 단절된다면 한국 고문서와 서화 복원은 외국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배첩장은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반드시 보호해야 할 문화 자산인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배첩장이 필요한 이유

많은 사람들은 디지털 복원 기술이 발전하면서 배첩장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큰 오해입니다. 디지털 복원은 원본을 촬영하거나 스캔하여 화면으로 재현하는 기술일 뿐, 실제 원본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원본 종이의 질감, 먹이 종이에 스며든 깊이, 붓의 필압 등은 디지털로 대체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오히려 디지털 복원은 배첩장의 손길을 거친 원본을 바탕으로 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 배첩 기술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지를 사용한 복원법은 내구성이 뛰어나 일본이나 중국의 방식과는 다른 독창성을 보여주며, 유네스코에서도 주목하는 전통기술 중 하나입니다. 배첩장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고문서는 단순히 문화재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 연구와 교육 자료로 활용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서책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면 연구자들은 당시의 종이 제작법, 필체의 변화, 기록 방식 등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중에게 공개될 때에는 우리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희귀 직업 배첩장 천년을 이어갈 장인의 미래와 과제

배첩장은 역사를 단순히 보존하는 직업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적 다리 역할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고려의 고문서를 직접 만지고, 조선 선비의 친필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배첩장의 기술 덕분입니다. 그러나 이 장인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배첩장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첫째, 후계자 양성이 필요합니다.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으며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정부와 기관이 장기적인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대중의 인식 개선이 요구됩니다. 배첩장은 단순히 종이를 붙이는 기술자가 아니라, 시간의 기록을 되살리는 전문가라는 점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제 교류를 통해 한국 배첩 기술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더 많은 문화재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배첩장이 단순히 ‘희귀 직업’으로만 남는다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장인을 ‘천년을 지키는 기록의 수호자’로 인정하고 미래 세대가 계승하도록 돕는다면, 배첩장은 앞으로도 한국 문화의 뿌리를 튼튼히 지켜낼 것입니다. 배첩장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고문서는 곧 우리 역사의 심장이 다시 뛰는 순간입니다.